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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2

by 데레사 이규숙 2019.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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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사건

실미도 부대는 1968년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인 '1.21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968년 4월 1일 북한 침투 특수공작원 양성을 목적으로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창설되었다.

정식 부대 명칭은 '209파견대'로 알려졌다.

실미도 부대원 31명은 현역 군인과 민간인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모집 과정에서 훈련 뒤 장교 임관과 미군부대 취직 등의 약속을 받고 실미도 부대원이 되었다.

강제 격리된 상황에서 고된 훈련과 구타 등에 시달리던 실미도 부대원 가운데 5명은 훈련 도중 탈영을 시도하거나 기간병에게 반말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살해되었다.

1971년 8월 23일 견디다 못한 부대원 24명은 청와대에 가기 위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인천 중구 소재)를 탈출했다.

탈출한 실미도 부대원들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던 중 인천에서 육군과 총격전을 벌였고,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다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 20명이 사망했다.

 

이때 경찰과 민간인도 모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군법회의를 통해 생존한 부대원 4명에 대한 사형이 1972년 3월 10일에 집행되었다.

사건 직후 정부는 '무장공비들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가 3시간 만에 '공군 관리 아래 있는 군 특수범'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2003년 실미도 사건을 소재로 만든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가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실미도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2006년 7월 발표된 진상조사 결과 실미도 부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북파공작을 위해 중앙정보부가 주도적으로 창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10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법은 실미도에서 탈출하다 사망한 북파공작원 3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추억사진들 남겨주시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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